"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인간의 행동과 사회의 흐름은 일정한 패턴을 보이며, 놀랍도록 유사한 방식으로 실수를 되풀이하곤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반복이 단순한 망각의 결과가 아닌, 집단 기억과 사회 심리학적 메커니즘에 기인한 것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대중 심리가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심리학적 통찰을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집단 기억의 작동 방식
우리가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아서 반복된다’는 관점에만 주목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적 시각에서는 그보다 더 복잡한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이라는 개념은 한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집단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모아놓은 데이터가 아닙니다. 그것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구성된 ‘의미 부여된 기억’입니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전쟁 경험이 국가주의적 서사 속에서는 ‘영광의 역사’로, 반면 다른 집단의 시각에서는 ‘피해의 역사’로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사건조차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되는 과정에서 많은 정보가 생략되거나 의도적으로 수정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심리적 작용 중 하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역사관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불편한 진실은 무시하거나 부정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선택적 기억은 사회 전체가 중요한 교훈을 놓치게 만들고, 결국 과거와 유사한 오류를 반복하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현대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과거를 깊이 성찰하기보다는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이는 역사에 대한 이해를 ‘한 줄 요약’ 수준으로 단순화시키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경향으로 이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사회는 반성보다는 재현의 길로 쉽게 빠져들게 됩니다.
사회 심리학이 말하는 군중의 움직임
심리학에서 인간은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는 존재이기보다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는 존재로 설명됩니다. 특히 다수가 모여 있을 때 나타나는 집단적 행동은, 개인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거나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리게 만듭니다.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동조(conformity)와 복종(obedience)입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나 솔로몬 아쉬의 동조 실험은 매우 유명합니다. 이들 연구는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권위자나 다수의 의견에 따라 행동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사회가 혼란스럽거나 불안정한 시기에는 이 같은 심리 작용이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보다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심리는 역사적 사건들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전체주의 정권이 등장했을 때 다수의 국민들이 침묵하거나 지지했던 것은 단순히 강압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들 저렇게 행동하니까 나도 그게 맞겠지"라는 집단적 확신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 심리학에서 말하는 ‘동조 압력’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SNS 상에서 특정 의견이 다수의 지지를 받을 경우,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소외되고 사라지며, 결국 ‘진실’은 다수의 의견으로 포장됩니다. 이처럼 대중의 심리는 언제나 불완전하며, 특정한 방향으로 흐를 준비가 되어 있는 구조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심리학적 고리로 작용하며, 반복되는 사회 현상을 설명해 줍니다.
권위에 대한 심리적 유혹
불안과 혼란의 시기에 사람들은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리더를 갈망하게 됩니다. 이는 개인 심리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집단 심리에서는 그 영향력이 훨씬 커집니다. 특히 사회 전체가 위기 상황에 놓였을 때는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는 강한 권위자가 등장하고, 대중은 그 인물에게 쉽게 의존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심리학 개념 중 하나는 ‘인지적 단순화(cognitive simplification)’입니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인간은 가능한 한 단순한 해석을 선호합니다. 누구의 잘못인지, 누가 우리를 구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구분해 주는 사람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스스로 사고하는 수고를 덜고 그에게 기대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독재자의 등장은 대부분 국민들이 심리적으로 지쳐 있을 때였습니다. 경제 위기, 사회 불안, 전쟁 등의 외적 요인에 더해, 국민들은 ‘나를 대신해 결정해줄 누군가’를 원하게 되는 심리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과거에 잘못된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는 다시금 권위주의적 리더가 등장하고 지지를 받는 일이 반복되곤 합니다. 이러한 리더는 종종 공포와 분노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지지 기반을 다집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감정은 이성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분노는 ‘정의’로 쉽게 포장될 수 있으며, 국민들은 누군가를 비난할 대상이 생기면 안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복잡한 세계를 감정적으로 단순화시키는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권위주의 체제를 반복적으로 허용하게 되는 중요한 심리적 요인입니다.
기억과 감정, 그리고 집단 심리의 삼각 구도 속에서 반복되는 역사
"왜 우리는 역사를 반복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과거를 공부하면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인간의 기억 방식, 사회적 영향력, 감정적 구조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심리학적 기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기억하는 방식 자체가 선택적이며 왜곡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단순히 '기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둘째, 우리는 집단 속에서 스스로 사고하지 않으려는 심리에 휘둘립니다. 개인의 판단보다는 다수의 판단에 의존하게 되며, 이는 잘못된 선택을 되풀이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셋째, 우리는 불안정한 시대에 강한 리더를 갈망하는 심리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이로 인해 권위주의가 반복되는 현상을 경험합니다. 따라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교육이나 정보가 아닙니다. 심리적 자각, 비판적 사고, 집단 기억의 성찰이 함께 이뤄질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새로운 방향의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