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서 병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명령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자주 묻게 됩니다. ‘어떻게 그런 명령에 복종할 수 있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심리학의 관점에서 전쟁 상황에서의 복종 심리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밀그램 실험을 통해 살펴본 권위에 대한 복종, 전장에서 더욱 뚜렷해지는 집단 동조의 심리, 그리고 병사의 정체성과 도덕 판단을 흐리게 하는 탈개인화 현상을 중심으로 분석합니다. 인간이 가진 심리적 취약성과 상황적 요인이 어떻게 결합되어 극단적인 복종 행동을 유도하는지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권위에 대한 복종 – 밀그램 실험에서 본 인간의 한계
전쟁 상황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는 “병사들은 왜 비도덕적인 명령에도 복종했을까?”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심리학 실험이 바로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입니다. 1961년 예일대학교에서 실시된 이 실험은, 권위 있는 인물이 지시를 내릴 때 평범한 사람도 어떻게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다수가 그 명령을 그대로 수행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놀라운 점은, 참가자들이 비인간적 명령에 대한 내적 갈등을 느끼면서도 권위자의 지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동을 지속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전쟁 상황 속 병사들과 매우 유사한 조건입니다. 상관의 명령은 곧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며, 그 명령에 불복할 경우 처벌이나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병사들은 윤리적 판단보다 명령 수행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또한 밀그램 실험은 복종이 단순한 개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의한 결과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은 병사들에게 ‘생존’과 ‘질서’라는 목적을 강조하게 만들며, 이는 개인의 도덕적 기준을 압도하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합니다. 결국 권위 앞에서 개인은 매우 약한 존재가 되며,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생존 전략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집단 동조 – 함께일 때 더욱 강해지는 복종의 심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동조(conformity)’라고 부릅니다. 전쟁 속 병사들은 대부분 집단 속에서 움직이며, 그 집단은 고도의 계급 구조와 일사불란한 명령 체계를 가집니다. 이런 환경에서 개인은 집단의 규범에 동조하게 되며, 때로는 자신이 원치 않는 행동조차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솔로몬 애시의 선 길이 실험은 동조 심리를 잘 보여줍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명백히 틀린 답변이 다수의 의견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병영 생활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주변 동료 병사들이 어떤 명령을 아무렇지 않게 수행한다면, 개인은 그 행동에 대해 도덕적 의문을 제기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이 이상한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전장에서의 집단 동조는 특히 압박감, 피로, 생존의 위협 속에서 더욱 강하게 작용합니다. 병사들은 ‘우리’라는 정체성 속에 자신을 융합시키며, 개인의 판단을 유보하고 다수의 흐름에 따르게 됩니다. 이는 전우애라는 이름 아래 명령 수행을 더욱 정당화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며, 명령의 도덕성보다는 소속감과 연대감이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결국 집단 속의 개인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소속된 무리에 거스르는 것이 불편하거나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복종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는 병사들이 왜 집단 안에서 더욱 강하게 명령을 수행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심리적 단서가 됩니다.
탈개인화 – 전투복 너머에 숨겨진 인간성의 소멸
전쟁은 인간의 심리를 변화시키는 극단적인 환경입니다. 특히 ‘탈개인화(deindividuation)’ 현상은 병사들이 비도덕적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심리적 기제를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도덕적 판단력을 상실하고, 군중 속에서 익명성과 감정의 분산을 통해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모두 동일한 군복을 입고, 계급에 따라 정해진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름보다 군번이 먼저 불리는 세계에서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은 흐려집니다. 이런 익명성은 병사로 하여금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그것이 ‘나’의 행동이 아닌 ‘병사로서의 임무 수행’이라는 인식을 강화시킵니다. 이는 곧 도덕적 책임감의 저하로 이어지며, 명령을 따르는 행위에 대한 심리적 저항을 낮춥니다.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스탠포드 감옥 실험’을 통해 평범한 대학생들이 교도관 역할에 몰입하며 어떻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특정 역할을 수행할 때 겪는 탈개인화의 영향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탈개인화는 인간을 추상적인 역할로 환원시키며, 개인적 책임감을 흐리게 합니다. 이로 인해 병사들은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명령도 심리적 부담 없이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나는 그냥 시킨 대로 했을 뿐’이라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전쟁 상황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 행위의 중요한 심리적 배경이 됩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이번 글에서는 전쟁 속에서 병사들이 비도덕적인 명령에도 복종하게 되는 이유를 세 가지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권위에 대한 복종입니다. 밀그램 실험은 인간이 권위 앞에서 얼마나 쉽게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포기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되며, 이에 따른 복종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생존의 방식이 됩니다. 두 번째는 집단 동조의 심리입니다. 병사들은 집단 속에서 함께 움직이며, 다수의 행동에 동조하게 됩니다. 이는 집단의 흐름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운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되며, 명령 수행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세 번째는 탈개인화 현상입니다. 병사로서의 역할은 개인의 이름, 정체성, 도덕성을 흐리게 만들며, 명령을 수행하는 ‘역할’만이 강조됩니다. 이로 인해 병사들은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마치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조종되는 듯한 상태로 전투에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은 단지 병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특정 상황에서 얼마나 쉽게 타인의 지시에 따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전쟁 속 병사의 복종을 비판하기 전에, 그 복종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더 윤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